벚꽃 터널 지나 고구려 당포성까지… 역사와 자연이 겹겹이 쌓인 연천의 봄
따스한 봄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3월의 끝자락, 경기도 최북단 도보 여행길인 ‘평화누리길’이 사계절의 색채를 담은 ‘DMZ 사색(四色)하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상춘객들을 맞이한다. 김포에서 연천까지 189km에 달하는 대장정 중에서도 특히 4월의 주인공으로 손꼽히는 곳은 단연 연천의 11코스, ‘임진적벽길’이다. 이곳은 단순히 꽃구경에 그치지 않고 구석기 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한반도의 유구한 시간을 관통하는 특별한 여정을 선사한다.
여행의 시작점인 숭의전지는 고려의 숨결이 깃든 곳이다. 태조 왕건의 기운이 서린 샘물 이야기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러 고려 왕조의 위패를 모시게 된 극적인 일화까지, 길의 초입부터 묵직한 역사의 울림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어지는 당포성은 고구려의 기상을 보여주는 천혜의 요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수직 절벽 위에 세워진 이 성곽은 고대 전술의 핵심이었으며, 훗날 6·25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UN군 화장장 시설과도 맞닿아 있어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단연 압권은 자연이 빚어낸 예술작품, ‘임진적벽’이다. 수십만 년 전 용암이 흘러내려 굳은 주상절리가 강줄기를 따라 병풍처럼 펼쳐진다. 조선의 화성(畵聖) 겸재 정선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화폭에 담았던 이곳은 노을이 질 때면 자주색 돌기둥이 붉게 타오르며 신비로운 장관을 연출한다. 적벽의 웅장함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새 출출해진 배를 채워줄 진상리 마을의 정겨운 맛집들이 여행자를 반긴다.
무엇보다 4월의 임진적벽길이 특별한 이유는 남한에서 가장 늦게까지 봄을 머금은 ‘진상리 벚꽃길’ 덕분이다. 임진교를 지나 강변을 따라 1km 넘게 이어지는 벚꽃 터널은 보통 4월 20일 전후에 절정을 이룬다. 도심의 꽃잔치를 놓친 이들에게 이곳은 마지막 봄을 만끽할 수 있는 선물 같은 장소다. 흩날리는 꽃잎을 맞으며 걷는 이 길은 현실의 시름을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봄의 끝자락인 5월이 오면 시간의 시계바늘은 더욱 멀리, 30만 년 전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는 5월 2일부터 5일까지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는 ‘연천 구석기 축제’가 개최된다. 세계 고고학 지도를 바꾼 주먹도끼의 발견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은 평화누리길 걷기 여행에 풍성한 즐거움을 더할 예정이다. 흐드러진 벚꽃과 웅장한 적벽, 그리고 역사의 흔적이 공존하는 평화누리길 11코스는 지금 이 계절, 우리가 꼭 걸어봐야 할 길이다.(더경기뉴스=이정미 기자)